친구의 부친상

Free 2005. 4. 1. 09:19
저녁나절 부른 배를 퉁퉁 쳐대며 오늘 밤은 어떤 일을 해야하나 추스리고 있을 즈음 학교 친구놈에게 전화가 왔다. S군의 부친상. 뭐 고인의 건강이 매우 안좋았다는것은 친구들끼리 다 알던 일이었지만, 막상 들으니 왠지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을법한 대사처럼 와닿았다.

일이고 뭐고 제껴두고 집으로. 상복을 차려입고 지하철에 몸을 ㅤㅅㅣㅎ고 생각에 잠긴다. 그간 선배, 후배, 친구들 통 틀어 이것이 몇 번째 부친상인가. 인간이란 - 적어도 - 출생신고 만큼의 사망신고가 있는게 당연한 일. 출생의 기쁨을 축하해주는 자리가 있다면, 작고의 아픔을 나누어주는 자리가 있는게 당연한 일. 하지만 아직 내가 어려서인지, 어색하기만 한 자리다.

몇 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놈이라 그런지, 원래부터 늘상 밝은 얼굴만 하고 다니던 놈이라 그런지, 상주인 친구놈은 빈소에 찾아온 조문객마냥 덤덤한 표정이었다. "왔냐? 오랫만이다. 저녁 먹고 가라" / "힘내라, 꺄". 학교다닐적 학생회실에 널부러저 있다가 들어오는 녀석 보고 나눴을만한 대화를 전혀 다른 공기의 질감을 느끼며 하자니 여간 어색한게 아니다. 여동생 표정도 퀭하고, 군대있다 급히 휴가나온 막내놈도 빈소 앞에 읍하고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시리다. 시간과 장소와 원인은 다르겠지만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을 날이 오겠지. 다만 그 날이 가능하면 나중이길 빈다. 적어도 내가 그 친구놈 만큼이나 덤덤하게 천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뒤였으면 한다.

나오는 길 새벽, 그녀석은 빈소 한 구석에 쓰러져 잠을 자고 있다. 꿈 속에서나마 고인과 못이루었던 부자의 정을 나누고 있으려나.


아버지, 아버지. 오래사셔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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