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0 버스

樂書 2005. 9. 12. 11:22
일요일 밤. 강남을 떠나 인천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언제나 피곤이 가득한 승객들을 가득 실어서인지 피곤 가득한 엔진 소리로 달리는데, 나 역시 피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금새 그 소리에 취해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 참 기묘한 버스이다.

하루종일 우울한 상념으로 정신적 피로에 지친 나는 멍한 정신으로 창문가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망상들로 잠은 오지 않는다. 어느새 버스는 긴 한숨을 내쉬며 출발하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두세자리 빼고는 만석이다. 왜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갖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자문이며 오래 전 부터 그 답을 잘 알고 있다. 내게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냄새가 풍겨나오는게 틀림없으니까.

다음 정거장에 멈춘 버스는 꾸역꾸역 승객을 더 태운다. 내 옆자리에는 긴 머리의 젊은 여성이 앉는다. 아마 다른 자리가 꽉 차서 더이상 앉을 자리가 없어서겠지, 분명.

이런저런 일상들을 PDA에 기록하고 있는 와중 그녀가 손에 꽉 쥐고 있는 전화벨이 울린다. 커다란 액정 덕에 무심코 돌린 시선은 "어무이"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받지 않는다. 버스는 어느새 고속도로를 들어서고, 맞은편 도로를 지나치는 자동차 불빛들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전화는 몇번을 더 신음하다 멈춘다. 그녀는 여전히 전화기에 관심이 없다.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피곤에 지친 한 주일의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버스의 피곤에 취해서인지 그녀는 깊게 잠들어 있는 듯 보였다. 그러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온다.

피곤의 끝에 편안함이 다가오면 그 편안함은 행복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작은 행복은 내게 미소짓게 한다.

그녀의 새근새근 숨소리도,
그녀의 머리결에서 은은히 흘러들어오는 샴푸향도,
가늘고 긴 그녀의 손가락들도,
오른손 엄지에 끼워진 묵주반지도,
왼쪽 눈썹 위의 작은 점도,
머리끈에 매달린 반짝거리는 장식도,
살짝 올라간 그녀의 미니스커트도
나를 미소짓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