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벌써 일년이다. 의식하지 않고 있던 와중에 문득 뒤돌아 보니 1년이 다 되어 간다. 사실,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질 않는다. 워낙에 숫자 외우기에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애초부터 그런것 잘 하지도 못했다. 비겁한 변명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 그러하니.

365일. 1년. 하지만 그 숫자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정확히 1년 뒤 그날이라 해도 지구의 공전 주기는 365.2422일이니 1주년 어쩌고 하는것 따위 낭만주의자의 전유물일 뿐,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수치이다. 사실상, 365.2422일을 맞춘다 하여도 태양의 은하계 공전은 배제한 수치이니 정확히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없다. 확장하면 끝도 없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365일이나 365일 근처이나, 정확치 않은 날짜 따위 중요치 않다는 의미. ... 이런 이야기 하려던게 아닌데, 머릿속이 왜 이리 혼란스러울까.

처음엔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더니, 슬금슬금 그녀의 빈 자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달 두달 흘러가면서 "빈 자리"라는 실체가 느껴지면서 "친구로 지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사라져갔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랬다. 하지만 갉아먹힌 자신감만큼 나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인내하고, 이해하고, 감사하려했다.

남들과는 다르게,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 상황도 있더랬다. 남들은, 빈민가 빨래줄에 널린 빨래처럼 너저분하게 널려진 미련 때문에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상황에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냉정을 찾고, 오래전 있었던 일들 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일들을 근거로 추리해보면 머릿속에 남는 결과는 없었다. 지나치게 혼동스럽다. 어쩌면 그런 정리가 나를 더욱 화나게 했었는지도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간적인 분노에 그녀를 곤란스럽게 한 적도 있었다. 곧 이어 지나친 내 행동에 사과는 했지만 그녀는 받아주지 않았다. 미련섞어 내뱉은 말에 그녀는 화만 내었다. 그래, 이제 머릿속에서도 슬슬 상황이 정리되어 간다.

정리된 결과가 맞는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어쨌건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그녀를 만났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원인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녀가 무척이나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분명 그녀는 화를 내겠지. 그런 일에는 그렇게 반응하는 그런 아이었으니까. 멋대로 추측하지 말라고 말했던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이어질 결과 까지도. 아, 이것도 내 멋대로의 추측이군.

나는 자신했지만, 네가 옳았어. 이런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되버릴꺼라는 너의 말이 맞았어. 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내 판단이 느려서였겠지. 어떤 결과든, 혼잡스런 이런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데 너는 기회조차 주려 하지 않는구나.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다가 혼란스러워 하다가 충분한 사긴이 흐르면 끝끝내 사그라들겠지. 벌써 1년이 그렇게 흘러가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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