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의 귀천

樂書 2004. 11. 6. 21:19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 식생활에 있어서 귀천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스테이크와 핫도그. 양장피와 자장면. 스시와 우메보시 도시락. 당신은 이러한 대조적(혹은 당신의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는)인 음식들을 늘어트려 놓으면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이런것만 먹고 살고 싶다.
비교할 가치도 없는 음식 같으니라고.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음식이란 본래 귀천이 없이 모두 다 귀하다. 직업의 그것처럼 어느 하나가 불현듯 사라져 버린다면 이 사회는 큰 혼란(과장을 조금 보태어)을 겪게 될 것이다. 늦은 저녁 술약속에 늦어 허겁지겁 거리를 뛰어가다 문득 출출함을 느끼게 되었다. 당신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야들야들한 스테이크를 우아하게 먹고, 뒤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해 당당히 친구에게 '스테이크가 나를 늦게 만들었다'라고 말할 것인가? 나같으면 핫도그 하나 입에 물고 가던 길을 계속 가련다.

구태여 음식들에게 특정한 기준을 두어 나누어야 한다면, 나는 그 기준을 "준비하는 이의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따끈한 흰 쌀밥에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게와 딱 알맞게 읽은 시뻘건 깍두기. 그런 아들을 지긋이 보고 계신 어머니는 어느새 눈가에 잔주름이 몇개 더 늘어 계시다. 당신의 아직 젖은 손을 옷자락에 훔치며 "많이 먹거라"라는 입에 바르지 않은(결코!) 말씀을 한마디 건네주신다.
고풍스런 청기와 한옥집, 부러진 상다리를 붙잡고 먹는 한정식에 비할 바가 아니다.(당연코!)


뽀그리 하나 물 부어놓고 이런저런 생각 하다 보니, 생전 몇번 먹을까 말까 한 고급 코스요리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식사 전에는 당신의 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아라.
무신론자라면, 식사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아라.

아아, 감사합니다. 오늘도 라면봉지 옆구리는 찢어지지 않았기에..




쓰고보니, intherye님[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쓰는 방법 -사례 연구 ] 라는 포스트에 실린 캔필드법이 보이는것 같다.
살포시 웃어 넘기는 것은 당신의 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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