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書'에 해당되는 글 270건

  1. 2005.09.20 표현력의 부족 2
  2. 2005.09.19 어휘 교육 3
  3. 2005.09.19 팔백구십이+삼백육십오일 즈음 1
  4. 2005.09.16 Requiem for a dream 5
  5. 2005.09.15 비공개님 보세요. 4
  6. 2005.09.14 자취생의 현실 15
  7. 2005.09.13 뮤직컬을 위한 전제 조건 11
  8. 2005.09.12 9200 버스 4

표현력의 부족

樂書 2005. 9. 20. 22:57
머리 속으로는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내 대뇌피질의 주름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이유 없는 의무감에 나는 틈틈히 그놈들 중 하나를, 도망가는 개미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올리듯 꺼내어 눈 앞에 놓는다. 자, 이제 이녀석을 어쩐다. 그것은 나에게만 보이는 잡생각이므로 타인에게도 보여지는 무언가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이 과정을 표현이라 한다. 그리고 이 욕구는 본능이다.

단언컨데, 이것은 선천적으로 부족했던 기질이다. 어렴풋한 기억들을 돌이켜보면 남들보다 못한 손재주에, 남들보다 못한 글재주에, 남들보다 못한 말솜씨를 지닌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이것을 생업으로 삼거나 혹은 절대절명의 숙원으로 여기어 노력했더라면 무언가 지금 즈음 이 블로그에 커다란 장편 몇 편과 멋진 그림같은 사진들이 올라와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변변찮지만.."하고 운을 뗀 노래 몇 곡도 올라왔을런지도 모른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나마, 이나마. 하지만 내가 표현해 낸 모든것들은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어느 새 유치한 느낌이 베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남들이 보아도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누가 뭐라 해도 표현해내리라. 그것은 나의 본능이니까.

표현하려 시도조차 하지 못한 많은 것들도 있다. 타인에게 잘 설명해주면 대신 표현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았으나, 역시나 설명해 줄 자신이 없다.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장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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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교육

樂書 2005. 9. 19. 18:59
모순. 矛盾. contradiction.

"아빠, 아빠. 모순이 머야?"

"응, 그건 말이다. ... 길거리에 쭉쭉빵빵 이쁜 아가씨들이 참 많지? 아주 쌈빡한 아가씨들이라 말 한마디 붙여보고싶은 그런 아가씨들 말이야. 그런데 그 아가씨들 옆에는 늘 스타일 좋은 남자들이 붙어있다는 말이지. 그런 상황을 말하는 거야."

"와. 단번에 이해했어요! 찔러볼 수도 없는 감 같은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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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벌써 일년이다. 의식하지 않고 있던 와중에 문득 뒤돌아 보니 1년이 다 되어 간다. 사실,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질 않는다. 워낙에 숫자 외우기에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애초부터 그런것 잘 하지도 못했다. 비겁한 변명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 그러하니.

365일. 1년. 하지만 그 숫자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정확히 1년 뒤 그날이라 해도 지구의 공전 주기는 365.2422일이니 1주년 어쩌고 하는것 따위 낭만주의자의 전유물일 뿐,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수치이다. 사실상, 365.2422일을 맞춘다 하여도 태양의 은하계 공전은 배제한 수치이니 정확히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없다. 확장하면 끝도 없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365일이나 365일 근처이나, 정확치 않은 날짜 따위 중요치 않다는 의미. ... 이런 이야기 하려던게 아닌데, 머릿속이 왜 이리 혼란스러울까.

처음엔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더니, 슬금슬금 그녀의 빈 자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달 두달 흘러가면서 "빈 자리"라는 실체가 느껴지면서 "친구로 지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사라져갔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랬다. 하지만 갉아먹힌 자신감만큼 나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인내하고, 이해하고, 감사하려했다.

남들과는 다르게,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 상황도 있더랬다. 남들은, 빈민가 빨래줄에 널린 빨래처럼 너저분하게 널려진 미련 때문에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상황에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냉정을 찾고, 오래전 있었던 일들 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일들을 근거로 추리해보면 머릿속에 남는 결과는 없었다. 지나치게 혼동스럽다. 어쩌면 그런 정리가 나를 더욱 화나게 했었는지도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간적인 분노에 그녀를 곤란스럽게 한 적도 있었다. 곧 이어 지나친 내 행동에 사과는 했지만 그녀는 받아주지 않았다. 미련섞어 내뱉은 말에 그녀는 화만 내었다. 그래, 이제 머릿속에서도 슬슬 상황이 정리되어 간다.

정리된 결과가 맞는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어쨌건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그녀를 만났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원인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녀가 무척이나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분명 그녀는 화를 내겠지. 그런 일에는 그렇게 반응하는 그런 아이었으니까. 멋대로 추측하지 말라고 말했던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이어질 결과 까지도. 아, 이것도 내 멋대로의 추측이군.

나는 자신했지만, 네가 옳았어. 이런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되버릴꺼라는 너의 말이 맞았어. 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내 판단이 느려서였겠지. 어떤 결과든, 혼잡스런 이런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데 너는 기회조차 주려 하지 않는구나.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다가 혼란스러워 하다가 충분한 사긴이 흐르면 끝끝내 사그라들겠지. 벌써 1년이 그렇게 흘러가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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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iem for a dream

樂書 2005. 9. 16. 10:17
레퀴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제니퍼 코넬리 외 출연 / 케이디미디어
나의 점수 :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까지도 머릿속이 멍해질 만큼 느낌이 강한 영화, 인상깊은 영화. 현란한 영상, 속도감 있는 화면.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BGM, 실험적인 카메라 워킹. 화면만 봐도 인상깊은 영화, 소리만 들어도 인상깊은 영화. 둘 다 함께하면 두 배 이상 인상깊어지는 영화. 주연이 셋, 하지만 연기는 하나. 화면은 셋, 하지만 내용은 하나. 내용은 있으나, 내용은 상관없는 영화. 의미는 있으나, 의미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영화. 역시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도 싸이코. 암, 분명 싸이코가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내뱉은 말은, "뭐야. 이거 뭐야. 뭐 이런게 다있어. 어떻게 이런게 있을 수 있어." 하고는 나중에 보다 좋은 환경에서 다시 볼 것을 다짐해 본다.

아참, 동경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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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님 보세요.

樂書 2005. 9. 15. 13:47
무어라 위로의 말을 드린다 할 지라도 심정의 변화는 없을테니(분명) 생략할께요. 사실은 그다지 위로해드리고 싶지도 않아요. 내심 잘되었다는 생각 뿐이니.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게 분명한데도, 이런 말을 하는건 무례일까요? 네. 그럴 수도 있지요. 아니, 분명 객관적으로는 무례에요.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 가슴아플 일들을 오히려 잘된거다 뭐라 하는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에요. 이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당신을 위해서이기도 한... 좀 미묘한 이유 때문이에요.

나는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좀 더 욕심을 내 보자면, 나 때문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꼭 나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고있는게 좋아요. 행복한 사람들 틈에 있으면 나도 행복해지는것만 같아요. 그래서 좋아요. 어쩌면 행복이란 무엇이다라고 정의내릴 줄도 모르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비웃을런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요. 당신은, 느낌이 좋아요. 그래서 그래요. 우리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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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의 현실

樂書 2005. 9. 14. 15:22
이제 슬슬 세수하면 얼굴이 땡기는 계절이다.

면도 후에 뭐라도 발라야겠다는 생각에 참이슬을 한번 쳐다보지만, 이내 포기한다.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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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돈

2. 시간

3. 같이 갈 아가씨



뮤직컬 불의 검. 너무 보고싶은데, 위의 세가지가 없다. 너무 보고싶으니 저 세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조건에 부합된다면 바로 가겠는데 말이지.

1이 있으면, 학교는 말없이 튀면 된다. 3은 없어도 그만 아니겠는가(과연?).

2가 있으면, 1이야 통장에서 인출하고 몇 끼 더 굶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역시 3은 없어도 그만.

3이 있으면... 어떻게든, 기필코! 1과 2를 만들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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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0 버스

樂書 2005. 9. 12. 11:22
일요일 밤. 강남을 떠나 인천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언제나 피곤이 가득한 승객들을 가득 실어서인지 피곤 가득한 엔진 소리로 달리는데, 나 역시 피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금새 그 소리에 취해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 참 기묘한 버스이다.

하루종일 우울한 상념으로 정신적 피로에 지친 나는 멍한 정신으로 창문가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망상들로 잠은 오지 않는다. 어느새 버스는 긴 한숨을 내쉬며 출발하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두세자리 빼고는 만석이다. 왜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갖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자문이며 오래 전 부터 그 답을 잘 알고 있다. 내게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냄새가 풍겨나오는게 틀림없으니까.

다음 정거장에 멈춘 버스는 꾸역꾸역 승객을 더 태운다. 내 옆자리에는 긴 머리의 젊은 여성이 앉는다. 아마 다른 자리가 꽉 차서 더이상 앉을 자리가 없어서겠지, 분명.

이런저런 일상들을 PDA에 기록하고 있는 와중 그녀가 손에 꽉 쥐고 있는 전화벨이 울린다. 커다란 액정 덕에 무심코 돌린 시선은 "어무이"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받지 않는다. 버스는 어느새 고속도로를 들어서고, 맞은편 도로를 지나치는 자동차 불빛들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전화는 몇번을 더 신음하다 멈춘다. 그녀는 여전히 전화기에 관심이 없다.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피곤에 지친 한 주일의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버스의 피곤에 취해서인지 그녀는 깊게 잠들어 있는 듯 보였다. 그러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온다.

피곤의 끝에 편안함이 다가오면 그 편안함은 행복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작은 행복은 내게 미소짓게 한다.

그녀의 새근새근 숨소리도,
그녀의 머리결에서 은은히 흘러들어오는 샴푸향도,
가늘고 긴 그녀의 손가락들도,
오른손 엄지에 끼워진 묵주반지도,
왼쪽 눈썹 위의 작은 점도,
머리끈에 매달린 반짝거리는 장식도,
살짝 올라간 그녀의 미니스커트도
나를 미소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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