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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면 이야기

Free 2007. 11. 1. 11:15

특별히 라면을 좋아하거나, 혹은 싫어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보통 사람들 처럼 말이지. 가끔 라면이 먹고싶을 때도 있고, "왠지 오늘은 꼭 쌀밥을 먹어야겠어!"하는 때도 있다. 이십여년 전에 라면이라는건 돈 없는 사람들이 밥 없어 먹는 식량이었는데, 요새 라면값을 보고 있자면 그건 정말이지 옛날 이야기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배고픔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서랍의 동전을 싹싹 긁어 모아서 230원을 만들고, 당시 가장 쌌던 "쇠고기X면"을 한개 사서 끓여먹은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요새 라면은 좀체 라면 같아 보이질 않는다.

내게는 라면을 먹는(어쩌다 먹는거 말고 주기적으로 먹는) 이유가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돈이 없어서이고, 둘째는 다른거 먹기가 귀찮아서이다.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몇 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돈을 모으기 위해 매일 점심 끼니를 라면으로 때웠다. 당시에 돈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꼭 사고 싶었던(당시의 기억으로는 꼭 사야만 했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시절이었다. 끝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때는 젊어서인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건 물론이거니와 몇날 몇일을 굶는것도 가능했던 때였다. 단지 아무 의미 없는 종이 두장을 사기 위해서였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웃음만 나온다.

대학 시절 자취하면서는 돈이 없어서 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아낀 밥값으로 당시의 여자친구와 함께 맛있는 식사(제대로 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니 그 방법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친구 몰래 그렇게 생활했던 시절이 있었다. 라면 살 돈 조차 없을때는 맨밥에 간장 몇 숟갈 넣어 만든 간장밥으로 허기를 달랬다(그래서 지금 내가 유일하게 못 먹는 음식, 안 먹는 음식은 간장밥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녀는(이미 내 여자친구가 아니게 된지 오래지만) 모르고 있을테지만. 돌이켜보면 참 힘든 시절이었다.

잠깐이었지만 회사다닐때는 나가는게 너무 귀찮아서 라면을 먹었다. 구내 식당은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었고, 외부 식당은 마을버스 타고 나가야 10분. 걸어가면 30여분 거리다. 그러니 늘상 조리하기 편한 라면을 먹는 수 밖에. 그래도 당시에는 돈 좀 쥐고 있었던 때라 라면이 지겨워질때면 의례 구내식당에서 밥을 사먹기도 했었으니까.

요새도 점심은 라면이다. 라면과 우유. 혹은 라면과 김밥. 요새 라면을 먹는 이유는 위에 나열한 두가지의 복합이다. 돈도 없고, 식당까지 걸어가면 20분이 넘게 걸리는 환경. 점심시간 1시간에서 왔다갔다 하는데만 40분을 소비하고싶지는 않다. 게다가 한끼 밥에 오천원을 쓴다는건 내게는 지나친 사치이니까.

라면을 오래 먹는건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도 라면만 먹으면 쉽게 물리기 때문이다. 나중엔 라면을 먹을 생각 하면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할 수 있으니까. 내 경험을 기준으로 라면 오래 먹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우선, 라면만 먹지 않는 방법이 있다. 라면과 우유, 라면과 밥은 참 좋은 조합이다. 영양학적으로도 그렇고, 맛으로도 그렇고. 하지만 돈이 없어 라면을 먹는거라면 이것도 쉽지는 않다.

매일 다른 라면을 먹는 것 보다 한가지 라면만 먹는게 좋다. 물론 이렇게 먹어도 질리는건 마찬가지인데, 이건 라면에 질리는게 아니라 그 특정 라면에 질리게 되어버리는 것이라서 더이상 못 참겠다 싶을 때 라면의 종류를 바꿔주면 된다. 바뀐 라면으로 또 물리도록 먹어주고, 물리면 또 다른 라면으로 바꾸고. 하는 식으로 버티면 라면이라는 식생활 패턴에 쉽게 질리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다. 만약 매 끼니 다른 라면을 먹게 된다면 쉽사리 라면에 질리게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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