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낯익음

Free 2006. 3. 7. 15:35
십여년 전, 그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일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고, 나역시 약속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지나가던 터였다. 그런 그녀는 마치 초등학교 동창을 십여년만에 알아보는듯한 낯익음이 있었다. 분명 내가 아는 누군가와 딱히 닮지도 않았거니와 시선을 끌 만큼 미인도 아니었던 그녀가 낯익게 느껴지는 낯설은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십여분을 그렇게 사람들을 기다리다 그녀와 몇 번 더 마주치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녀는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만 같은 운명적인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수백명이 오고가는 그 거리에서 오직 그녀만이.
나중에 만나기로 한 일행 중에 그녀가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뭔가 척추 깊숙한 곳 부터 머리까지 올라오는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보여준 낯설은 낯익음은 내게 하여금 "운명"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해 주었다.

물론, 그녀와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시점 이후로도 나는 그녀와 관계된 나의 모든 것들을 운명이라고 느끼고 있다. 아직까지도.

몇년 전 학교에서 한 학생을 보았을 때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눈에 띄는 모습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녀가 낯익었다. 그녀와 닮은 누군가를 아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놨던것도 아니다. 그녀는 내게 낯익었다. 두번째이니 그다지 낯선 느낌은 아니었으나, 아직까지도 나는 충분히 낯설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인가 부터 더이상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으려 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소식을 묻는것은 왠지 그녀에게 해를 끼치는듯 하여 묻지도 않았다.

어제, 길을 지나다 그녀를 보았다. 이것은 낯설지 않은 낯익음. 그녀를 스쳐 지나가고 나는 몇번이고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순식간에 그녀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뭘까. 이것도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줘야 하는것일까. 뒤쫓아 뛰어가 "너 나 알지 않아?"하고 물어봤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녀 또한 내게 "낯설은 낯익음"을 느끼고 있을런지도 모르잖는가. 붙잡아 세워놓고 "다시는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라 말해주면 다소곳이 미소지으며 끄덕여줄런지도 모른다.


훗. 하지만 난, 이젠 그럴 나이가 지났지 않은가.


방금 또 그녀를 보았다. 이번엔 내가 전화하며 걷고 있었기에 아무 말 건넬 수 없었다. 나이때문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