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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뒤돌아 보며

樂書 2007. 12. 21. 01:49

남들만큼이나 특별한 연말은 아니겠지만, 내 나름대로 올 연말은 특별한 연말이다. 평생에 한번 밖에 없는 2007년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내 20대 나날들의 마지막이기도 한 때문이다.

10대의 마지막은 훈련소에서 보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10년 전 이맘때쯤이면 총검술이 있던 6주차 훈련 기간이었을 것이다(그렇다면, 내 10대의 마지막은 총검술인가!). 유년기의 마지막 해인 9살의 겨울에는 무얼 했는지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마도 그때는 그 시기가 평생에 한번 밖에 없던 시기였는지 미쳐 몰랐을 때였으리라. 초등학교 3학년이 어찌 인생의 흐름을 인지한단 말인가?

10년 동안 나는 대체 무얼 했던가? 군대를 갔다 왔고, 반년간 컴퓨터 학원 강사를 하고, 나머지 7학기의 수업을 들었고, 2년 5개월간의 연애를 하고, 1년 반의 회사생활을 하고, 2년 동안 대학원 연구실에서 칩거했고, 최근의 반년은 허울 좋은 알바를 뛰고 있다. 휴대폰 연락처 목록에 285명을 저장하고, 대략 300병의 소주를 마셨고, 6만여 개피의 담배를 피우고, 그 동안 마셔온 자판기 커피와 믹스 커피의 잔 수는 헤아릴 수 조차 없다. 전공서적과 같은 유(類)를 제외하고 20여 권의 책을 읽었고, 50여 편 정도의 영화를 보았다. 할머님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는 환갑(還甲)을 지내시고, 사촌 형과 사촌 누나가 결혼을 하여 세 조카가 태어났다. 15kg의 살이 찌고,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배도 조금 - 아주 조금 - 나오기 시작한다.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 사건들이 있었는가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들도 있다. 이건 누구나가 마찬가지겠지만. 잊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 있었고, 잊고 싶은 추억들이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성장해가고, 변화해가고, 더욱더 강해져 간다.

그 끝에 서서, 10년 뒤 이맘때쯤을 추억했을 때 뭔가 기억에 남는 그럴싸한 것이 필요한데 말이다. ‘아! 10년 전 오늘은 이런걸 했었는데……’할 수 있는 그런 것. 거창한 연애도 크게, 오래 기억에 남을 법도 싶은데, 현실로 당장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연말에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기왕이면 볼 살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겨울 바다가 있는 곳으로(태초부터 겨울 바다에는 낭만 따위는 결코 없다). 동해나 남해로(작금의 서해안 분들께는 죄송할 따름). 좀 크게 잡으면 제주도도 좋고. 동/남해라면 1박 2일. 제주라면 2박 3일. 어떤 코스가 좋을까. 아니면 옷 두툼히 입고, 편한 운동화 신고 무작정 남쪽으로 걸어가볼까. 2박 3일 정도 걸으면 천안까지는 걸을 수 있지 싶다.

뭔가 기억에 남을만한 그런 것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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