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자랑

Free 2005. 11. 5. 21:47
내 모교는 인하대학교. 仁荷大. Inha University. 1954년 하(荷)와이에 살던 주민들이 고국의 교육 사정을 우려하여 기부금을 모아 이승만 전대통령한테 전달하였고, 그 기금으로 공업대학교를 인(仁)천에 설립하였다. 해서 생긴게 우리학교.

오래전 명성은 꽤나 대단했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사실 어쩐지 모르겠다. 대교협이 주최했던 작년 대학종합평가에서 9위라는 쾌거를 기록했던것도 조금은 의아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 물론, 자랑스럽긴 하다만.
(이 이야기를 적으니 그 평가에 제출해야했던 자료를 만들기 위해 작년 여름~가을, 스물댓개의 열과 만몇천개의 행을 가진 시트가 열개쯤 되던 40Mbyte짜리 엑셀문서를 밤낮으로 편집했던 알바가 기억나는구먼...)

타 학교 친구들에게 학교 자랑을 하면서 흔히 하는 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걸 뭐라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민족 고대", "통일 연세" 하는 식으로 학교 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 우리학교의 경우,



"가격 인하"되겠다. 뭐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그 정도로 학교 앞 물가는 자랑할만 하다. 다른 학교라봤자 화양리, 신촌, 대학로, 녹두 정도 놀아봤지만 이동네만한 곳이 없었다. 지금은 그나마 좀 비싸진 편이고, 입학할 당시에는 학교 물가에 대만족이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친구 넷을 우리 학교로 불러들였던 적이 있었다. 저녁식사 전이라 밥을 먹을 까 했던 친구들을 만류하고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면 맥주를 못마실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동네는 공기밥이 무한리필. 그래서 밥 한끼 먹을 때 한공기만 먹으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다. 당시(97년) 밥 한끼에 2,000원. 지금은 3,000원.
그때의 맥주집은 아직도 기억나는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Felling ][. 필링투. 다섯명이서 맥주 삼천 시키고 안주로는 탕수육 하나 시켰다. 친구들은 안주 두개 시켜서 넉넉히 먹자 했지만(밥도 안먹었으니), 나는 알고 있었기에 하나만 시켰다. 잠시 뒤 기본안주가 나왔는데 한놈이 그러더라. "우리 이거 안시켰는데요?" 뭐, 그런 이야기가 나올법도 한게, 서울의 다른 술집 스페셜처럼 차려진 한접시가 기본안주로 나왔으니까. 또 잠시 뒤 탕수육이 나왔고 친구들은 또 한번 놀라했다. 흔히들 탕수육 접시 위에서 수영할 수도 있다고 표현하는 그 탕수육. 접시 크기는 대략 한 아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가 한마디 덧붙여 줬었지. "골뱅이소면 시켜서 먹으면, 조심해야해. 자칫 잘못하면 무너지거든."
탕수육. 다섯명이 밥안먹고 먹어도 안주가 남았드랬다.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 당시 맥주 삼천에 8,000원. 탕수육 한접시에 5,000원으로 기억함.

맥주 배부르게 먹고 시간이 좀 남아서 노래방에 갔었는데(여기는 지금도 남아있는 멜로디 노래방), 한시간이던가 한시간 반이던가를 넣어놓고(그당시도 지금도 만원),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30분 추가 서비스. 환호하고 더 놀다보니 유리문 너머로 주인 아주머니님이 보인다. 리모콘을 콕콕콕 하시더니 가신다. 15분 추가 서비스. 한참을 또 놀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님이 오신다. 15분 추가 서비스. 또 몇 분 놀다 보니 주인아주머님이 오신다. 15분 추가 서비스. 친구들은 막차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몸으로 문을 가리고, 주인 아주머님이 서비스를 더 못 넣으시도록 막아본다.


뭐 대강 학교 분위기가 좀 이렇다. 나는 학교에 애착도 많고 자긍심도 강해서 어딜가서 "인하대생입니다"하고 말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학교에 대해 딱히 자랑거리라고 말할 수 있는게 이 주변물가밖에 없다는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뭐 학교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것이 애착의 증거가 될 수는 없으니까, 상관 없지만 말이다.

동균.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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