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樂書 2006. 8. 11. 20:38
처음부터, 너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분명 직접적인 원인은 - 아직도 그렇지만 - 너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날 너는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어. 네가 잘못한거야. 화를 내야 하는건 내쪽이란 말이야. 하지만, 너를 그렇게까지 만든건 나니까. 내게도 절반은 책임이 있는거지.

분명 내게도 책임이 있는데, 나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 어디까지나 머리속에서만 메아리 칠 뿐, 그게 이해가 되진 않았어. 가슴으로는 그런 너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너를 보면, 너를 생각하면 화부터 치밀어 올랐지. 그건 분명 너를 향한 분노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나를 향한 분노도 아니고.. 대상을 알 수 없는 그런 류의 분노야.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우리의 관계 유지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너를 앞에 두고 그렇게 뒤돌아버리는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아마도 그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 때문이었겠지. 지금도 후회가 되. 그나마 가끔 걸던 전화 마져도, 그런 죄책감 때문에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더군.

어제 밤 꿈을 꾸었어. 보통, 꿈 따위 꾸질 않아왔는데, 어제는 무슨일인지 꿈에 너를 보았지. 너랑 몇시간이고 줄창 수다만 떨었어.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우리 옛날 이야기도 하며 서로 웃고.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문득, 이젠 너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분노 따위도 더이상 생겨나지 않았고.

내가 아무리 너를 용서한다 하여도, 나에 대한 너의 무관심은 여전하겠지. 그런 너를 탓하진 않아. 내게도 절반은 책임이 있으니. 그냥 뭐,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이야.


널 떠나 보내고 2년이라는 의미없는 시간이 지난 후, 이제서야 뒤늦게 너를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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